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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ague

드림매치 2009, 부천종합경기장을 가다. 보다. 느끼다.

by ayubowan 2009. 7. 19.
사실, 나는 1주일 전에 발가락에 금이 갔다. 그래서 고작 휴가라고 받아서 집에서 쉬는거 말고는 할수 있는 일이 없는 그런 신세에 지나지 않았다. 조금 알차게 보낸다고 가정한다면 '박민규'의 소설을 읽는 정도. -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사실 충분히 알차게 보내는 것이긴 하지만;) -

사실, 나는 7월 18일 부천 FC와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의 경기도 알고 있었다. 
엔크린을 가슴에 박고 뛰던 부천에 있던 팀을 제주로 줄행랑 치듯 옮겼던 모기업 SK로 부터 상처받은 부천서포터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부천 FC가 모기업이 SK로 알려진 SK 텔레콤이 후원하는 행사를 통해 의미 있는 경기를 펼치는 아이러니한 상황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가지 사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그래서 치루어야 하는 기회비용은 아래와 같았다.
1. 금이 간 발을 이끌고 뭐 재수가 없어서 발가락이 조금 삐뚤어 자랄 위험을 감수하고 아이러니 하지만 의미있는 경기를 보느냐-
2. 1층이지만 반지하 같은 자취방에서 내 발가락을 위한다는 핑계로 그래도 조금은 알차게 휴가를 보내려고 책이라도 피느냐-

뭐, 그런거 아니겠는가;)

월남전까지 참전하신 노의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뼈를 제자리로 옮긴다며 내 발가락을 쥐어흔들 다음주 월요일의 비명소리가 벌써 귀 속을 맴돌지만, 여자친구와 신림역에서 만나 던진 500원 짜리 동전이 나를, 아니 우리를 경기장에 가게 했다. 뭐 500원짜리 동전의 앞, 뒤 면에 가끔 오늘의 행방을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발에 깁스를 하고 비오는 날 축구장을 찾아가는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매니아틱하고, 오덕후가 아닌가 의심을 살 법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시선일량 오늘 만큼은 감수할 수 있는 그런 아마추어틱한 기분이 드는 오후였다. 초저녁이 맞겠다.

intro가 길었다. 각설하고-
오랜만에 찾은 경기장의 푸른 잔디는 정말이지 언제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자꾸 오타쿠의 냄새를 느낄 지도 모르겠지만 별로 그렇지 않다고  빨갛고 굵게 강조라도 해두고 싶은 심정이다.

(이정도 깁스야;)

(선수들이 막 몸을 풀기 시작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이미 많은 수의 관중들이 본부석 근처를 매우고 있었다. 총 2만명 정도의 관중이 찾았다고 하니- 1만5천쯤 오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했었는데 나름 얼추 - 부천 시민들의 축구 사랑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을 듯 하다.)

경기의 식전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경기장에는 아래의 UCC가 계속 흘러나왔다. 뭐랄까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뭉클거리게 만드는 그런 노래이며 영상이었다. 그러게, 난 왜 괜스레 부천 FC에 관심을 갖았을까? 무언가 모를 동질감, 연민이 어디서 나왔을까? - 뭐 노래도 괜춘하고 30초 밖에 안되니, 다들 한번씩 클릭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 생각에 친절하게 동영상도 첨부하여 -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 궁금, 질문은 부천서포터즈이며 주주(?)인 '헤르메스'를 보면서 깨달았다.
그들이 부천 FC를 지지하는데는 어떠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축구가 좋고, 거기에 내 팀이고, 그들이 잘하든 못하든 축구를 즐기는 우리의 팀이기 때문에. 스타 플레이어, 프로페셔널한 테크닉, 월드컵 경기장이라고 흔히들 명명된 최신 경기장에 호기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즐기는 사람, 사람들의 집합체가 아닐까라고 감히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은 1982년 프로라는 이름의 스포츠를 시작한 프로야구의 원년에 삼미슈퍼스타즈의 팬이었던, 그래서 박민규 소설의 주인공이 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이젠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난, 프로라구요
프로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아닙니까?
하루 빨리 프로가 되게
허허, 이친구 아마추어구먼
맛에도 프로가 있습니다
이러고도 프로라고 말할 수 있나?
프로의 정식 명칙은 '프로페셔널'이다
프로는 끝까지 책임을 진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프로 주부 '9단'

등의 프로를 유구하는 세상에서 아마추어의 순수함을 느낄 수 있어서, 그리고 동질감이 느껴져서 - 내가 어렵게 살듯 그들도 같이 고생하고 있다는 일종의 동질감 이랄까 - 이렇게 바깥쪽으로 삐뚤어져 붙어버질지도 몰라서 월요일의 비명 소리가 들릴거 같은 몸을 이끌고 나는 부천종합경기장에 온 건지도 모른다.

알레~ 부천 알레~
부천의 승리을 원해
위대한 부천을 위해서-

그렇게 경기는 시작됐다.

(막 입장을 마친 선수들)

(경기 도중 비가 쏟아지자 차양막 앞쪽에 앉은 관중들이 우산을 꺼내 쓰고 있다. 그 모습이 제법 질서 정연하다.)

(후반전 시작과 함께 통천이 올라간 모습-그들이 열성적인 응원은 정말이지 즐거웠다라고 이렇게 강조할만 하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싸인 볼을 차주기 위해 여기 저기로 흩어지고 있다.)

아마추어라고 생각했던 부천은 생각보다 강했다.
공격시 방향 전환도 훌륭했고, 이러한 전환을 통해서 - 감독님도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 양쪽 윙을 효과적으로 잘 사용했다. 몇 차례의 위기를 제외하면 부천이 압도한 경기였다. 유나이티느 오브 맨체스터 (유맨)의 선수들은 가끔 날렵한 개인기를 구사하기도 했지만 잔디에 적응을 못한건지, 아니면 비에 젖어서 미끄러웠는지, 아니면 혹시 매력적인 한국 여자에 넋이 나갔는지 - 물론 이런 이유일리야 절대 없겠지만 - 실수를 자주 보여주었다.

보통 친선경기가 약간은 맥빠지게 진행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는데, 오늘 경기는 확실히 양팀 모두 열의를 느낄 수 있는 경기였다. 스코어도 흥미로웠고, 관중들의 열띤 응원, 헤르메스의 서포팅 모두 만족스러웠던-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나려고 발버둥 지다가, 오랜만에 맡아본 아마추어의 냄새에 환호성이 커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직,
경기장의 잔디 냄새가 코에서 다 빠져나가지 않은 거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