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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그 섬에 내가 있었네_김영갑

by ayubowan 2013. 9. 17.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저자
김영갑 지음
출판사
휴먼앤북스 | 2007-05-2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김영갑의 2주기를 추모하며..... 루게릭병으로 6년간 투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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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에게서 책 선물을 받았다. 

무언가 뜻을 담고 있는 책일까 혼자 생각해보았지만 책의 소개를 보고 그런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냥 왠지 읽고 싶었다. 책을 선물 받고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읽지 않고 책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른 책들처럼 방치할 수 없었다. 그냥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2.

푸른 초원에 서 있는 나무와 하늘 그리고 약간은 회색 빛이 도는 구름이 한 데 어울린 파노라마 사진이 선명하게 박혀있는 책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대학교 1학년 그리고 2학년 여름 방학 때, 자전거 여행을 떠났던 제주도가 생각나는 사진이다. 

처음으로 간 제주도의 풍경은 어디를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었다. 

책의 내용을 읽기 전까지 사진을 훓어본 나에게 '제주도'를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진들이었다.

그냥 억새풀 사진인데도 생기가 있는 느낌이랄까?

사진의 ㅅ도 모르지만 '작가'라는 느낌이 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3.

아름다운 제주도의 경치를 찍은 사진과는 조금 다르게 내용은 사진작가 '김영갑'의 이야기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 소개해준 뜻밖의 인물이다. 


1985년 사진을 찍기 위해 제주도에 정착해서 2005년 루게릭 병으로 유명을 달리하시기까지 꼬박 21년의 시간을 제주도에서 보내며

사진에 미쳤던 한 사내의 담담한 자기 이야기이다. 혼자 되기를 거부하지 않았던 아니 기꺼이 자청하고 나선 그가 사진에 '몰입'하면서 제주도에서 겪었던 경험과 생각들이 투박하게 쓰여있다. 


참, 멋있는 삶을 살았구나 싶다.


4.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한 '김영갑'이 보여준 자세는 가히 경이적이다. 외부 시선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진실되려고 노력하면서 고통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진실된 행동이라 생각했으리라. 그런 자세 였기에 남들에게는 평범해보이는 풍경에서도 아름다음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 제주도의 노인들에게 배운 그대로 치열하게 자기 몫의 삶을 살았다. 


참, 멋있는 삶이구나 싶다. 물론 적당한 돈과 여가 시간 그리고 취미 활동 등의 여유로운 생활을 꿈꾸는 지금의 시대에 감히 흉내내기 쉽지 않으며 또 멋진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외적 기준보다는 내적 기준으로 치열하게 정면 돌파하면 살아야 하는 나에게 나름의 대답을 전해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된다. 


본문 중에서


모두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게 우선이다. 나 자신이 흡족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느끼고 표현할 때까지는 사진으로 밥벌이 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에 늘 자신에게 진실하려 했다. -37쪽 - 


순간순간 다가오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이 길을 포기하고 다른 무엇을 선택한다 해도 그 나름의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다른 일을 선택해 환경이 변한다 해도, 나는 나이기에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혼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어디를 가나 방황하고 절망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분명 끝은 있을 것이다. - 64쪽 -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르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엇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84쪽-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경치가 빼어난 곳을 찾아가면 좋은 사진을 찍게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어떤 바다나 강에도 큰 고기는 있기 마련이다. 운이 좋아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운은 사진가 스스로 준비해서 맛이하는 것이다. - 145쪽 - 


노인들을 따라 들로 나갔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바람 속에서 새벽부터 저녁 어스름까지 일하는 노인들 곁에서 온종일 밭일을 거들었다. 두툼한 외투를 입어도 한겨울 찬바람을 다 막아주지는 못했다. 점심도 찬밥 한 덩이가 전부다. 일 년 내내 받을 기어 다니며 일해도 궁색함을 면하기 힘든 게 그들의 생활이었다. 서울에선 상상조차 못했던 삶이다.

그들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형편없고 가치 없는지 깨달았다. 자신만만하게 세상과 삶에 대해 떠벌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는 말수가 적어졌다. 

- 중략 -

제주의 노인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자기 몫의 삶에 치열하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몫의 양식은 스스로 해결하는 노인들을 통해 해답을 찾곤 했다. 노인들은 나에게 답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만난 노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크든 작든 한 덩어리의 한을 간직하고 있지만, 묵묵하게 자기 몫의 삶에 열중한다. 온갖 두려움과 불안, 유혹 따위를 극복하고 삶에 열중하는 섬의 노인들은 나의 이정표였다. 


5.

스리랑카가 생각나는 구절이 있어서 옮겨보았다. 

스리랑카에서 교류했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가까이 지냈던 선생님들에게 나도 떠난 사람이 되었을까? 

그래서 KOICA 단원들을 자주 대하셨던 아베 선생님이나 위키 선생님이 조금은 천천히 마음을 열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혹시 그들의 평화를 몰래 가지고 오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본문 중에서 


민밥직 주인들이 손님에게 필요 이상의 정을 붙이려 하지 않는 지를 비로소 알았다. 나는 늘 떠나는 사람이기에 떠나보내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여행객들을 퉁명스럽게 대하는 토박이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떠나는 사람들은 떠난 뒤에 가끔 섬을 그리워하지만, 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단조운 생활에 사람이 늘 그립다. -149쪽-


평화로운 마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불협화음이 잦아졌고, 사람들도 서서히 변해갔다. 관광객들은 섬을 떠나면서 마을의 평화 한 움큼씩 가슴에 담고 갔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가져왔던 도회지의 스트레를 몽땅 섬에 남겨놓고 빠져나갔다. -151쪽-


ps.

본인의 경험이 우러난 글이 전해주는 감동이 있나 보다.

그가 몰입하여 찍었던 삽시간에 펼쳐진 제주도 자연의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감사합니다.


고마워, 잘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