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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_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외

by ayubowan 2020. 3. 22.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국내도서
저자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크리스틴 웨인코프 듀란소(Christine Weinkauff Duranso),필립 래터(Philip Latter) / 제효영역
출판 : 샘터사 201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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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무슨 책을 읽었는지 나중에라도 아는 척 해야하는데, 적어놓지 않으면 잊어 버리기에 독후감과 서평의 중간 정도 느낌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칭찬을 받으니 더 잘 써야한다는 작은 압박감이 든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나의 달리기 I

어렸을 때부터 가파오는 숨에 헐떡거리면서도 끝까지 달려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달리기에 희열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운동 빈도와 운동량의 50~75퍼센트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하던데<출처: 데이티브 엡스타인, 스포츠 유전자>, 달리기에 대한 관심은 타고난 것일 수도. 초등학생 시절에는 학생 수가 100명 미안인 소규모 학교를 다닌 덕에 분수에 넘치게 육상부 경험도 잠깐 해봤다. 물론 시대회에 나가서 예선을 통과한 적은 한번도 없는 실력이지만. (그래도 대회 날이며 운동장 근처에서 외식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체력장을 통해 일년에 한번 정도 나쁘지 않는 체력과 지구력을 확인하고 뿌듯해하고는 했다.

 

의무 교육을 벗어난 이후에 자의로 다시 달리기를 즐긴 것은 스리랑카에서다. 체력을 관리할 요량으로 집 근처 도로를 뛰었다. 스리랑카의 왕복 2차선 국도에는 1 키로마다 표지석이 있어서 GPS 시계나 스마트 폰이 없어도 페이스를 맞추며 달리기 좋다. 그해에 수도인 콜롬보에서 열리는 국제 마라톤에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시작했다. 하지만 매연 저감 장치가 없는 버스에서 내뿜는 매연과 낯선 외국인의 등장에 호기심을 보이는 현지인들의 지나친 관심이 달리기로 인해 건강해지는 효과와 제로섬이 아닐까 자주 의심이 들었다. 차량 통행이 적은 시간에 나가고, 현지인의 관심도 줄어들면서 제법 열심히 달렸으나, 아쉽게도 대회에는 나가지 못했고, 일이 바빠지면서 귀국할 즈음에는 거의 달리지 못했다.

 

다시 흥미를 붙이고 지금까지 달리고 있는 것은 방돌이와 연구실 후배 그리고 대학원에서 받은 스트레스 덕분이다. 성실과 착실의 대명사와도 같은 방돌이가 당시 자취 방 근처의 천변으로 달리기를 하러 가거나 10키로를 뛰겠다고 대회에 나가는 모습이 자극이 되어 덩달아 뛰게 되었다. 적어도 달리는 동안에는 진척이 없는 연구와 졸업에 대한 조급함에서 해방될 수 있어서 점차 빠져들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레이스를 즐기다가 연구실 후배가 함께 10키로 대회에 나가자고 제안하여 드디어 처음으로 대회에 참가한 것이 2017년 12월이다. 이후로 지금까지 5번의 대회에 나갔고, 러닝 강습에 참가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서 연습도 하면서 취미로는 제법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

 

두 다리를 움직여 빠르게 내딪다보면 숨이 가파오고, 조금 지나면 생각이나 고민, 잡념은 멀어지고 호흡과 달리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그 순간을 맞이하는 게 제법 매력적이다. 그런 달리기를 조금 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찾아보다 이끌려 골랐다. (쓰고보니 내 서평에서 제일 중요한 건 책을 왜 골랐는지 같기도 하다.)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총평

저자는 긍정심리학 분야를 개척하고, 몰입<flow>의 개념을 제시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와 그의 제자인 크리스틴 웨인코프 듀란소(Christine Weinkauff Duranso) 그리고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한 육상 코치인 필립 래터(Philip Latter)이다. 저자들의 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리기 책이라기보다는 흔히 무아지경<in the zone>에 빠졌다고 표현하는 몰입이라는 심리 현상에 대한 인문학 서적이다. 그리고 몰입을 경험하기 쉬운 달리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달리기에 대한 비중이 결코 적지 않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부터 주대표 선수 그리고 저자 자신에 이르기까지 달리기를 통해 몰입을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사례가 제시되어 몰입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를 통해 몰입 현상의 다양한 요소(몰입의 정의, 몰입을 위한 선행 단계, 몰입의 결과, 몰입에 유리한 특성 등)들을 설명하고, 몰입을 달리기에 활용하는 방법 그리고 궁긍적으로 몰입 경험을 삶으로 끌어오기 위한 방법까지 (아주) 방대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본인도 모르게 깊게 몰입했던 순간을 분석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 몰입을 자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 달리기를 좀 더 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평1. 몰입의 실체에 대한 이해

우리 모두 언젠가는 몰입했던 적이 있다. 꼭 힘들게 달리지 않더라고 그 순간을 몰입이라고 표현하지 않더라고,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거나 혹은 순간순간이 또렷이 기억나면서 행복감을 느꼈던 경험들 말이다. 경험적으로는 알지만 그 현상을 정의하거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경험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적절한 용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대신 그런 수고로움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우리는 전문가가 쓴 책을 읽고 이해하면 된다. 지금처럼 말이다. 

 

몰입은 자칫 신비롭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경험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일종의 심리학적 현상이다. 이 책의  공저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1970년대에 몰입 현상을 처음으로 규명했고, 이후 40여 년간 수백 명의 학자들이 이 현상을 연구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자주 몰입하는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게, 더 큰 성취감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14쪽

 

몰입은 명확한 목표, 해결 과제와 기술의 균형, 정확한 피드백이란 선행 단계가 갖춰져야 시작하며, 이 세가지 선행 단계가 없으면 몰입의 나머지 여섯 가지 특징(주의집중, 행동과 인식의 융합, 통제력, 자의식의 상실, 시간 개념의 왜곡, 자기 목적성-내적 동기부여)은 나타나지 않는다. 54쪽

 

몰입을 자주 경험하는 사람들은 성실성 점수가 높고 신경성 점수가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01쪽

 

몰입한다고 해서 그동안 달리기를 하면서 얻은 속도와 체력, 기술이 마법처럼 확 좋아지지 않는다. 그와 같은 부분은 모두 열심히 훈련하면 향상시킬 수 있다. 몰입한다고 해서 반드시 선두 그룹에 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두에 달리는 것 역시 노력과 인내를 통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결과다 몰입은 속도 조절 전략이나 달리는 자세를 바꿔주지도 않는다. 이는 달리기라는 스포츠와 자기 자신을 연구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몰입은 지름길이 될 수 없다. 몰입은 올바른 방식대로 장기간 헌신적으로 노력할 때 그 결과이자 보상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318쪽

 

 

평2. 차라리 몰랐다면

몰입에 대한 경험도 있고, 몰입이 어떤 것인지 이해도 했다. 더욱이 좋아하는 달리기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됐다. 그런데 몰입은 원한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란다.

 

몰입은 원한다고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통제가 불가능한 이 특성은 큰 놀라움과 좌절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302쪽

 

심지어는 간절히 바랄수록 더 하기 어렵다고 한다.

 

몰입의 가장 큰 장벽 중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특성이다. 간절히 바랄수록 손에 더 잡히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315쪽

 

구체적이고 평가 가능하며, 현재 수준에 비추어 과도하지 않는 수준에서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정확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서 긍정적으로 성실하게 노력하라는 데 (읽기만 해도 숨막히지 않는가......), 당연한 소리라는 생각은 차치하고 몰입을 위한 선행 단계를 온전히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다. 오히려 몰입에 대한 이해와 몰입의 경험 사이의 거리감이 책을 읽고 나서 더 넓어진 것 같다. 몰입을 알고 나니 몰입이 더 어려워졌달까. 차라리 몰랐으면 자연스럽게 했을 것을......

 

 

이랬거나 저랬거나 나는 또 힘이 닿는 한 달릴 생각이다. 스리랑카에서 나가지 못한 콜롬보 마라톤도 나가봐야 하고, 형네 가족이 미국에 계속 있다면 형네 집에 놀러가는 겸 솔트레이크 마라톤 대회도 나가고 싶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