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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할매의 탄생_최현숙

by ayubowan 2020. 5. 5.
할매의 탄생
국내도서
저자 : 최현숙
출판 : 글항아리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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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파주 지혜의 숲에서 만난 두 번째 책

 

 

나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구술사에 대한 관심

7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26년생이시다. 어렸을 때부터 큰집인 우리 집에 자주 들르셨고, 언제인가부터는 같이 사셨다. 아마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퇴직하신 이후인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이후 계속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길게 나눌 기회가 잘 없었다. 집에 들어가고 나갈 때 인사드리면 덕담을 해주시거나 짧은 축복 기도를 해주시는 걸 받은 게 전부이다.

 

군대에 제대하고 나서 일을 하기 전까지 두어달 집에서 지낸 시기가 다 크고 나서 같이 시간을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건강이 많이 편찮으시던 시기라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했는데, 할머니는 어떠셨는지 모르겠다. 종종 옛날 본인 사신 이야기를 해주시는 걸 들으면서, 할머니의 지나온 삶은 어떠셨을까 더 늦기 전에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만 어렴풋이 하다가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때 구술사라는 걸 알았더라면 뭐라도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게 7년 전이다.

 

가끔 할머니 생각이 날때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집 앞 텃밭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일하시다가 밭일을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로 다투셨는데,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에게 결코 지지 않으시던 모습이다. 어떤 작물을 키우려고 하셨던건지 어느 분 말씀이 옳은 방법이었는지 결론은 어떻게 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불같던 할머니의 모습은 또렷하다. 또 하나는 아버지 친구분 중에 성이 소씨여서 소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집에 방문하셔서 안에 계신 할머니께 "할머니, 소 사장님 왔어요!" 했는데, 할머니께서 "소에도 사장이 있다냐"하고 농을 치신 일이다. 요즘으로 치면 아재개그 같은 건데, 그 말에 낄낄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27년생이신 외할머니도 올해 돌아가셔서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를 직접 듣는 기회는 영영 놓치고 말았다. 요즘은 어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라도 듣고, 정리해보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그냥 구술로 누군가의 삶을 듣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에 조금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다.

 

<할매의 탄생>

 

 

총평

대구에서 청도로 가는 30번 지방도가 통과하는 삼산리에서 삼정산과 우미산이 맞닿은 계곡을 5키로 정도 더 들어가면 나오는 산골짜기 마을인 우록2리의 할머니 여섯 분과 어르신 한 분의 구술을 엮어 낸 책이다. 1928년생부터 1954년생까지 일곱 분이 들려준, 생애와 지역에 대한 말들이 빼곡히 들어있다. 

 

구술을 엮어낸 구술생애사인 만큼 할매들이 전해주는 고생스런 과거와 가난의 이야기, 며느리로써 아내로써 어머니로써의 이야기, 농사 일과 가사 일에 대한 이야기가 경상도 사투리 그대로 옮겨져있다. 포항에서 4년 살았지만 사투리를 체화하지는 못했기에 글을 읽는 초반에는 사투리가 조금 버거웠으나 차츰 속도가 붙었다. 서울 사람인 저자가 녹취를 풀어내기 위해 했을 노력에 존경을 표하며, 중간중간 있는 주석이 큰 도움이 되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가진 보통 사람들을 담는 다는 [인간극장]처럼 자신만의 사연을 가진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어떤 소설보다도 흡입력있다. 넋두리 같은 이야기 속에 담긴 해학과 지혜를 발견하는 재미는 덤이다. 김훈의 [공터에서]를 읽으며 느꼈던 흙 냄새보다 더 진한 흙 내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1. 어머니로써의 할매들

"자기는 죽도록 농사짓고 시골에 살믄서도 자슥들은 우쨌든 내보랠라(361쪽, 곽판이)"고 애쓰신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모를(361쪽, 곽판이)" 심는 절실감이 한가득이다. 그 과정에서 느끼신 서운함, 아쉬움 그리고 재미도 여과없이 느낄 수 있다.

 

일해가 돈 쪼매 생기면 이삼십만 원 모타가 아들 갖다 주고 했어예. 지 은행 있으믄서, 학교가 짜르이께네 고생이 될거 같아가. 맞다, 우리 아들 실적 늘콰줄라꼬 거를 가고 또 가고 그랬다 카이. 그래 했는데도 원망만 하는 기라. "오매가 한 게 뭐 있노?" 이칸다. - 중략 - 

나가 하나도 안 한 게 아이라예. 한다꼬 한 게 그거뿐인 거라예. 다들다들 긁어모은 게 그거빾에 안 된 거라예. - 중략 -

하이고 마 이제는 잘합니더, 큰아들이고 큰미누리고 이자는 잘합니더. 큰 자슥들이 그래도 제일 낫지예. 제사도 다 알고, 어무이 아부지 생신 날자도 잘 알고. 잘하는데, 내가 그말이 글케 서러버가 안 잊어져가 이캅니더. (61쪽, 조순이)

 

그리고 장에 장사 갔다 올 때도, 저 밑에 고 아까 차들 올라가는 거 오르막에 걸어 올리는데, 한 대여섯 시 돼가 오믄 몸이 디여 죽겠어예. 몸이 디가 헐떡헐떡하매 올라온다. 올라오는데 딸아가 전화 와가 "오매 뭐하노?" 그래. 장 가서 장사하고 온다 소리 몬하고 "논다" 이카고 치우고. 딸자테고 아들자테고 속이고 살지, 다 말은 몬해예. - 중략 -

그런데 한번은 자에서 물건 팔고 있시이께 전화가 왔어. "오매 뭐하노?" 카데. 그때 가을이라 추불 땐데, "내 오늘 뭐 쪼매 가지고 자아 왔다" 카고 바른소리 했거든. "빨리 가라, 빨리. 택시비 주께 택시 타고 빨리 가라" 카데. "빨리 가라. 안 가마 내 돈 주나봐라, 돈 주나봐라" 그케 막 썽을 내고 끊더라꼬. 뭐한다꼬 "돈 주나봐라, 돈 주나봐라" 그깨쌓노? 그까다가 아프믄 병원비가 더 들고 몸만 더 곯는다꼬 난리다. 글치만도 내 취미가 그런 걸 우야노? 그걸 아해가지고 밥은 몬 묵는 거는 아이지만, 그기 취민 거라. 그러고부텀 아아들헌터 더 숨카요. (169쪽, 유옥란)

 

 

2. 농사꾼으로써의 할매들

산골짜기 마을에서 가족들 먹이고, 자식들 키우기 위해 벼, 보리, 콩, 담배 등 농사를 쉬지 않으신 분들이셔서 농사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통찰력과 노하우가 돋보인다. 특히 담배 농사, 콩 농사와 메주 만들기, 명주 짜기 등에 대한 구술의 상세함은 한 분야에 매진한 전문가로써 손색이 없으시다. 글을 통해서나마 삶의 자세를 조금은 배워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고생한 억울함과 한이 서려있기도 하다. 양가적 감정이 어떤 것인지 가늠만 해볼 뿐이다.

 

제일로 미안코 고마운 거는 영감도 자슥도 뭐도 아니고, 땅이지 싶어예. 몸뚱아리 하나 말고는 암것도 없는 사람인데 애쓴 만큼 내주고. 힘들다 밉다 싫은 소시 한번 안 하고 해마다 주고 또 주고. (106쪽, 조순이)

농사일이 좋아가 했겠나? 할 줄 아는 게 땅 파가 곡식 숭구는 거밖에 없어가 한 거라. 아무리 농사가 좋다 그캐도 그기는 거짓말이라. 농사가 좋기야 좋지. 땅이 고맙지. 고상시럽게 일하마, 해마다 달마다 곡식이랑 열매랑 맺어주고, 땅이사 고맙지. 근데 그기 돈이 너무 안 되는 기라. (359쪽, 곽판이)

난리가 나도 밭을 갈고, 피란을 가도 논 따문에 멀리 몬 가고 가차이 숨었다 와가, 김 매놓고 또 숨으러 가고, 영감이 죽고 자슥이 죽어나가도 논에 모 숭구러는 가고......그래 살아온 거라.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모를 숭궈야 하는 거라. 그라이 아무리 기가 차고 억울해도 땅은 갈아야 하는 거라. 그렇게만 알고 산 거라. 그래 살아놓이 한이 많지마는, 그래 살믄서 또 한을 잊은 거라. (361쪽, 곽판이)

 

 

3. 나이듦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더 이상 빨라지지 않는 달리기를 통해 본인의 나이듦을 표현했다면, 우록리 할머니들의 나이듦은 오랜 노동에서 오는 통증을 통해 찾아온다. 거기서 비롯된 걱정과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할머니들의 삶 그 자체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날 것의 나이듦을 느낄 수 있다.

 

엎어지미 자빠지미 세월 보내마 정신없이 살다보이, 세월이 언제 가 버린 건지 기가 맥힐 노릇이지. 그래 이자는 기막힐 노릇이라고 생각 안하고, 이기 내 길이다 그래 편하게 생각하고 살아야지. (339쪽, 김효실)

 

이제 마 다른 극정은 없는데, 나가 오데 아프까이 그기 하나 걱정이라. (249쪽, 이태경)

죽는 거 생각하믄 무섭다 카이, 하하하. 옛날에 할매들이 그카데. "하이고, 아프지 말고 잠자드끼 가야 쓰겄다" 내 애려서 보마 할매들이 그카디마는, 내는 무슨 소릴 저래 해쌓는가 했더마는 그기 이자 내 앞에 다단이 오는가 싶다. (259쪽, 이태경)

 

요양원이 어딨는가도 모리는데. 그 할매 자석들이야 뭐 지네 생각도 있고 사정도 있고 그캤겠지만, 내는 그렇게 안 죽고 싶다. 집에서 죽고 싶다. 내내 살던 여 마실서 죽고 싶다 카이. (378쪽, 곽판이)

 

영감은 먼처 갔어예. 편키는 해도 외롭제이. 아파도 나 혼차 있으이 앓는 소리도 안 내고 그랍디다. 끙끙 앓는 소리도 들은 사람 있을 때나 나오는 거라 캅디다. 혼차믄 마 그 소리도 안 내고 아프이, 그기 더 속병이된다 캅디다. (393쪽, 임혜순)

 

 

4. 그외

이름을 밝힌 일곱 분과 무명의 어르신들이 전해주신 사연을 따라가며 웃음을 주는 이야기, 통찰력 있는 시각,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구술들을 접하다 보면, 470쪽 분량의 이야기가 술술 읽힌다.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본 바탕이 되었겠지만 구술생애자 저자가 잘 풀어낸 덕분이리라.

 

연필로 내가 써놓은 거가 있는 거 보이 배우기는 배운 긴데, 와 츰 보는 거 겉은가 모리겠어예, 하하하. 마 콩나물 물 주드끼 그래 생각코 기양 하는 거라. 콩나물 기를 때 물을 주마, 물이 다 빠져나 오는가 싶어도 콩나물은 크거든예. 거랑 똑같다 싶어예. 다 잊어뿌는 거 같아도 하나씩 남는 거가 있더라꼬예. 그래가 아는 글자가 하나씩 생기니 그기 좋고. (88쪽, 조순이)

 

아흔을 살다보니, 사는 그기 빌기 없더라 카이. 그러그러 한 세상이라. 마이 가졌다고 마이 배웠다고 사는 기 편한 기 아이라, 그저 없는 사람한테 나쁘게 안 하고 정직허게 사는 그기 제일 잘 사는 기고 맴이 편한 거라. 그래 사는 거지 뭐. (348쪽, 곽판이)

 

백구야, 여 슨상님 저 웃길까지 델따드리고 온나. 델따드리라 카이께네...... (379쪽, 곽판이)

 

 

, 구술을 듣는 청자이자 이야기를 풀어쓴 작가가 중간중간 추임새도 넣고 질문도 하는 내용이 구술의 느낌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중간중간 작성되어 있다. 화자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말들인데, 지나치게 편향된 발언은 아닌가 하는 싶은 것들이 한두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