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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어디서 살 것인가_유현준

by ayubowan 2019. 4. 14.

 

어디서 살 것인가
국내도서
저자 : 유현준,유현준
출판 : 을유문화사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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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집을 구하려고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고 있다. 직장에서도 멀지 않고, 대중교통도 이용하기 쉽고, 주변에 녹지 공간도 있고 등등의 조건으로 고르다보면 너무나도 비싼 집 값과 마주하게 된다. 조금 옆 동네로 옮겨가고 조금 더 외곽으로 이동하다보면 어디서 살까에서 시작한 질문이 어디서 살 수 있을까, 어딘가 살 수 있는 곳은 있을까 류의 질문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서 아파트가 빼곡하다 못해 숲을 이루고, 빌라가 있는 동네는 공원 하나 없이 촘촘히 빌라가 들어섰는데, 왜 내가 살 수 있는 공간 하나가 없을까 하는 푸념이 절로 나오는 시기이다. 하지만 아직도 살 곳을 정하지 못했기에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고민을 이어가던 시기에 도서관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빼곡한 책장에서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거 보면 사람은 꽤나 자기 중심적인 것 같다.) 그리고 내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있나 싶어서 읽게 되었다.

 

'어디서 살 것인가? 이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다. 서술형 답을 써야 하는 문제다. 그리고 정해진 답도 없다. (372쪽)' 라는 저자의 말처럼 문제에 대한 답을 직접 제시해 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 곳이 어떤 곳이 되길 바라는지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게 한다. 

 

2.

대학원이 있던 건물의 답답함, 회사 사옥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답답함, 걷고 싶은 거리와 삭막한 거리의 차이,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무언가 다른 외국와 우리나라의 길거리, 어릴 적 골목길과 달리 삭막함이 느껴지는 지금의 골목길, 쇼핑몰의 인테리어가 자꾸 바뀌는 이유 등 평소에 막연히 궁금했던 혹은 느낌으로만 느꼈던 것들을 건축의 관점에서 설명해주는데, 그 관점이 꽤나 설득력있다. (일부분에서는 지나친 비약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흥미롭다.)

 

이처럼 현대 도시의 다양한 요소들을 건축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우리 도시가 '좀 더 '화목한 세상 (370쪽)'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준다. 저자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건축이 '좀 더 화목한' 삶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한 흔적을 옅볼 수 있다.

 

3.

책을 다 읽고 나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이 분절되기 보다는 연결되고,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간에도 분리되기 보다는 융화되고,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으면서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곳이 어디냐!!!)

 

- 아래에는 본문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 

 

4.

4-1. 학교/사옥에 대한 이야기

'똑같은 옷, 똑같은 식판, 똑같은 음식, 똑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파트 단지에서 생활하고, 나중에는 '똑같은 납골당'에 안치되는 그러니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체주의적인 공간'에서 지내는 우리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들은 심지어 최소 4주에서 최대 1년 6개월까지 군대도 다녀오니 전체주의적 사회가 될 수 밖에 없구나 싶다.) 그래서 학교, 집 그리고 회사에서 정해진 공간, 정해진 구역, 규격화된 공간 말고 각양각색의 공간, 여백이 있는 공간, 딴짓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건축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층에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으면 더 좋고.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던 민속촌이 떠올랐다.(이렇게 불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운동장 끄뜨머리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했는데 그네, 팽이칠 수 있는 공간, 씨름장, 원두막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 운동장은 놔두고 그곳에서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며 많이 놀았었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구석진 공간 그리고 자유도가 있는 공간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아, 물론 싸움도 다 그런 곳에서 일어났던 것 같기도...)

 

베를린에 학회 때문에 갔을 때도 숙소에서 학회장까지 걸어가며 보았던 초등학교들마다 운동장이나 놀이터가 우리나라처럼 규격화되지 않고, 자유로워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적의 놀이터(https://news.joins.com/article/22598059) 라고 만들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이런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 싶다.

 

본문 중에서 

 

학교가 점점 고층화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학교에서는 40~50분 수업하고 10분 쉰다. 10분 쉬는 시간에 네 개 층 계단을 뛰어 내려가서 운동장에서 2, 3분 쉬고 다시 뛰오 올라올 아이는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모두 교실에서 지낸다. 무려 12동안이나 말이다.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10분 쉬는 시간 동안 잠깐만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면서 하늘을 볼 수 있다. (35쪽)

 

아파는 내 집 같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파트 건물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수십 채의 집이 모여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아파트는 나의 감정과 연동되지 않는다. (41쪽)

 

건축과 관련된 사회학을 연구한 로버트 거트만에 의하면 1, 2층 저층 거주지에 사는 사람들은 고층 주거지에 사는 사람보다 친구가 세 배 많다고 한다. (42쪽)

 

방송과 마찬가지로 건축물도 여려 멍의 공통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지어지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사는 도시가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 안에 사는 많은 사람의 건축적 이해와 가치관의 수준이 반영된 것이다. 좋은 도시에 살고 싶은가? 나부터 좋은 가치관을 갖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83쪽)

 

4-2. 도시에서 공적/사적 공간과 사람 친화적인 도시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비중이 윤택한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다. 한 가지 예로 기존에는 같이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뛰어놀 수 있는 정주형 공적 공간이었던 골목길이 점점 차가 이동하기 위한 이동형 공간으로 바뀌면서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이 정주하는 공간이 줄어서 이제는 삭막한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역시 어떤 현상을 이해하려면 적절한 개념 혹은 프레임이 필요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예를 들어 왜 좁은 관에서는 물이 빨리 흐르고 면적이 넓어지면 물이 천천히 흐르는지 명확히 설명하려면 '유체역학'이라는 개념이 필요하고, 왜 영구기관이 불가능한지 이해하려면 '열역학'이라는 개념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막연히 골목길이 삭막하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공간의 기능을 정의하고 원인과 결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공부를 해야한다.

 

본문 중에서 

 

과거에 골목길은 동네 이웃이나 친구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이야기하는 공간이었다. 쓰임새를 모면 마당은 사적인 정주 공간이고 골목길은 공적인 정주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골목은 주차 공간이 되었다. 공간적으로 승용차는 밖에서 안을 보기 힘들고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사적 공간이다. - 중략- 도시의 시민 입장에서 본다면 정주하는 공간을 그만큼 빼앗긴 것이다. (100쪽)

 

대형 쇼핑몰에는 변화하는 자연이 없다 보니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쇼핑몰은 몇 년에 한 번씩 대대적인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한다. 그리고 더 잦은 변화를 위해 수시로 변화하는 콘텐츠인 멀티플렉스 극장을 도입한다. - 중략- 변화하는 미디어가 자연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125쪽)

 

걷고 싶은 환경이 되려면 걸을 때 풍경이 바뀌어야 한다. (137쪽)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골목길은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진 다양한 체험이 있는 길이고 휴먼 스케일에 가장 가까운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39쪽)

 

건축에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오래된 화두가 있다. - 중략 - 이 말은 모든 형태는 특정한 기능을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 중략- 하지만 건축물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첨가되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명제가 항상 성립되지는 않는다.

 

5.

유현준 건축가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