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검사내전_김웅

by ayubowan 2019. 4. 7.
검사내전
국내도서
저자 : 김웅
출판 : 부키 2018.01.19
상세보기

 

1.

삼성역 근처에 교육이 있어서 갔다가 점심에 시간이 조금 남아 코엑스 지하를 둘러보았다. 자주 가지 않아서 그런지 갈 때마다 새로운 곳에 온 것 같은 지하 공간을 거닐다 읽을 만한 책을 찾을 요량으로 서점에 들렀다가 만났다. 물론 책은 낙성대공원도서관에서 빌렸다. 낙성대공원도서관에 또 한 번 감사!

 

2.

다 읽고 나서 찾아보니 꽤 오랫동안 베스트렐러였다네.

 

검사가 어떤 사람인지 뉴스로만 들었는데, 검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호기심에 책을 골랐는데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가 보다. 검사 이야기라는 소재가 주는 흥미뿐만 아니라 글도 생각보다 재미있다. 약간의 따뜻함, 아웃사이더 기질을 동반한 삐딱함 그리고 유머가 조금씩 잘 어우러져 읽는 맛이 있다.

 

3.

권력의 하수인, 검사동일체의 원칙 등 부정적 이미지를 잔득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검경수사권 조정 논쟁으로 시끄러운 검사지만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383-384쪽)'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초년생의 입장에서 생활인으로 하루하루를 온전히 살아갈 용기를 조금 얻어간다.

 

- 아래에는 본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4. 

4-1. 사기 공화국 풍경

치타에게 쫓겨 목숨 걸고 도망가는 톰슨가젤처럼 필사적인 사기꾼들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경찰, 검찰의 조사 방법과 절차에 능통한 사기꾼들, 법을 이용하고, 사람들의 욕심을 이끌어내는 사기꾼들과 마주했던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현장감과 씁쓸함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역시나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더 기이하고 기괴하다.

 

"가젤은 목숨 걸고 뛴다. 그래서 치타라도 잡기 힘들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지만 때때로 가젤을 놓친다. 그래도 가젤과 결탁해서 일부러 놓아주었다고 비난받지는 않는다" (38쪽)

 

"논리와 이성의 천적은 부조리가 아니라 욕심이다. - 중략 -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 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63쪽)

 

"제대로 충고하려면 애정을 빼고, 주저하지 말고, 심장을 향해 칼을 뻗듯 명확하고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감안해서 애매하게 할 거면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 (96쪽)

 

"가장 좋은 먹잇감은 새끼들이다. - 중략 - 야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평생 야수 한 마리 안 만나겠는가. 야수 한 마리로도 세상은 충분히 지옥이 될 수 있다." (111쪽)

 

4-2. 사람들, 이야기들

사기 이외에 이런저런 사건들을 다루면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검사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직업인데, 또 남의 말을 절대로 안 듣는 직업이기도 하다. (138쪽)"라는 말이었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야 했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명쾌한 말이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반응을 보이더라도 내 얕은 수준에서 쉽게 판단하기보다 좀 더 기다려보고 존중하는, 성숙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남의 말을 잘 믿어주는 것과 달리 그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165쪽)

 

"인권 의식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 중략 - 존엄한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고, 훼손될 경우 반드시 응분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 마음대로 짓밟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짓밟힌 것이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간청해야 한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존엄하 것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192-193쪽)

 

"욕구와 충동 속에서 사람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의 존재는 선택이 결정짓는다. 결국 선택이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221쪽)

 

4-3. 검사의 사생활

검찰이라는 기관에서 검사로 지내면서 겪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가 가진 약간의 삐딱함을 그리고 기개를 옅보며 나를 돌아보게 했다. 삶의 철학이나 기준을 올곶게 만들어가며 살고 싶은데, 여전히 방황하는 나라는 사람은 어찌 살고 있나 잠시 생각해 봤다.

 

"시간이 쌓이면 자신의 색깔은 사라지고 점차 주변의 색깔에 묻힌다. 그렇게 주변과 비슷해지면 생존에는 유리하다." (227쪽)

 

"검사장이 등산을 가자고 할 때 떼로 산에 가는 거 싫어 한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236쪽)

"그게 단합이면, 그럼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주나요?" (240쪽)

 

"물론 수사에서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 중략 - 여기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상상력은 오직 가설을 만드는 데에만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빠지는 오류가 상상력으로 사실을 만드는 것이다." (248쪽)

 

"[피로사회]를 쓴 한병철 교수는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깊은 주의가 과잉주의에 밀리고 있다고 했다. 심심함을 참지 못하여 저 깊은 심심함을 허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실상 그것이야말로 창조적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263-264쪽)  

 

4-4. 법의 본질

검사로써 법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법률 서비스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공평한 법 집행에 과학기술이 시사하는 바와 법조인들의 반응, 형사 사법의 한계, 김영란법의 효용성에 대한 고찰, 사법권이 상실된 우리나라에서 사법개혁의 방향, 형사처벌 편의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 등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조금은 생소한 단어들에 소화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마도 어려운 이야기라서 가장 뒤에 배치해 둔 것 같다.

 

5.

직업 윤리를 잃지 않고, 현재를 낙관하며, 존엄성을 지키는 생활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