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태백산맥, 1부 恨의 모닥불, 1권 - 3권_조정래

by ayubowan 2013. 6. 10.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01-10-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여순반란사건을 축으로 한과 이데올로기의 세계를 형상화한 대하소설...
가격비교


1. 선택

대학교 1학년 때 인가? 아니면 2학년 때 인가?

집 책꽂이에 꼽혀 있는 태백산맥 1권을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했었다. 

흥미로운 전개이기는 하지만 끝내 내용에 몰입하지 못해서 1권을 반쯤 읽다가 포기하고 포기하고 그랬었다.


한국에 돌아와 책 좀 열심히 읽어야지 하는 즈음에,

친한 후배가 태백산맥을 열심히 심취해서 읽길래 다시 호기심이 생겨 집어 들었는데,

20대 초반에 보았을 때 느끼지 못했던(?) 재미에 빠져들어 열심히 읽고 있다.


2. 작가

예전에 [한강]을 읽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작가 조정래가 현실을 바탕으로 소설에서 만들어낸 다양하면서 섬세한 세계는 경이롭다.

얼마나 많은 조사와 얼마나 다채로운 생각을 해야 이런 세계를 상상해 낼 수 있을까 하는......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 한강에서는 서울, 태백산맥에서는 벌교, 보성, 순천 등 - 

다양한 배경을 가진 등장 인물들이 얼키고 설키며 풀어가는 이야기가 

왜 [태백산맥]이 대하소설(大河小說) 인지를 몸소 증명해 주고 있다.


3. 인물

수 많은 등장인물들을 행동 유형에 따라 적절히 분류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대충 이정도 분류는 가능할 듯 싶다.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 - 염상진, 하대치, 정하섭, 안창민 등 

원래 기득권 이었고 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 - 지주들과 읍장, 남인태 경찰서장 등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고민하고 현실에서 개선을 꿈꾸는 사람들 - 김범우, 손승호, 심재모 등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 - 빨치산의 부인들, 소작인들

좌익 혹은 우익에 동조하는 사람들


항상 이런 근현대사 관련 책을 읽다 보면 나는 과연 어떤 행동을 했을까? 저 분류들 중 어디에 속하는 인물이 되었을까? 하는 그런 궁금증이 생긴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에 반대했을까? 미군정의 억압적인 관리를 겪었다면 공산주의에 매료되지는 않았을까? 그저 지금처럼 흐르는 대로 이름 없는 등장 인물이 되었을까?


한편으로는 가만히 책을 읽다보면 각 인물들이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성품에도 좌우되지만 결국은 그가 속한 계급 내지는 계층에 크게 좌우 되는 것 같다. 결국 환경적 요인이 그러한 인물을 창조하는 데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 선한 역할을 하거나 혹은 악한 임무를 맞는 "주도적" 인물이 존재한다. 현실에서 처럼 말이지.


정리하자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개인의 선택은 각 개인이 처한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잘잘못을 가리고 누군가를 단죄하는 일은 지나간 과거를 복기하는 미래의 사람에게는 쉽지만 동시대의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 그렇게라도 해야 시간이 흐른 뒤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 여지가 생기기에 -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리라. 그래서 역사를 알아야하고.


4. 지역

전라도 사투리를 글로 나마 다시금 접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여수 출신인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실 때면 격한 사투리를 쓰셔서 어릴 적에 엄마가 통화할 때 옆에서 듣고 엄청 웃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왜 할머니랑 통화하면 변신해?" 뭐 이런 질문을 하면서 말이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고향인 고흥에 어릴 적 놀러가면 육촌 동생과 항상 놀았었다. 충청도에서 내려간 우리 형제의 수는 셋이고 육촌 동생은 한 명이라 동생이 하는 사투리를 신기해 하며 따라한 기억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집 보다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많아지다 보니 나도 ~겨 라는 종결 어미를 사용하는 충청도 사람이 되어서 일까 다시금 듣는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다. 광주가 고향인 친구가 자기가 쓰는 말을 글로 읽으려니 닭살이 돋아서 못 읽겠다는 말을 하긴 하더라. 


그나저나, 날씨가 추워지는 때가 되면 벌교를 바라보며 꼬막을 먹어야 겠다.


-


1권, 78p

"좋아요, 어떤 주의를 따르든 그건 개인의 자유지요. 그러나, 그것이 곧 민족 전체를 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미국이다, 소련이다, 민주주의다,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정치적 택일이 아닙니다. 그건 한 민족을 세운 다음에나 필요한 생활의 방편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민족의 발견입니다. 그 단합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해요."


1권, 168p

그가 괴로워하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주의든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 사상의 실현을 위해서 인간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점이었다. 인간을 위한 주의가 아니라 어떤 주의를 위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변질을 그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설득과 이해의 균형이 없이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그 어떤 주의나 사상보다는 차라리 원시상태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1권, 210p

민족단위의 한 국가를 이룩한 다음에 자기가 이상하는 바를 따라 어느 주의든 선택하고 주장하면서도 조화가 깨지기 않게 삶의 추상적 무늬를 그리며 함께 있어야 했다. 그런데 같은 민족 위에 두 개의 나라를 만들고 제각기 하나씩의 주의를 선택함으로써 반대되는 주의를 적으로 삼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주의의 실천을 위해 서로의 심장을 겨누어 총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3권, 244p

"아부지는 얼굴도 몸도 뻘건 디는 하나또 웂는디 워째 사람들은 아부지보고 빨갱이라고 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