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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28_정유정

by ayubowan 2019. 3. 12.

1. 

처음으로 읽은 정유정의 소설이다. 빠른 호흡으로 쉼없이 전개되는 이야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하루 동안 꼬박 읽었다. 이런 재미라면 정유정의 다른 책들도 접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2.

아이디타로드(Iditarod)라는 개썰매 경주에 참여한 최초의 썰매꾼이자 수의사로 유기견 보호소 드림랜드를 운영하는 서재형, 신문기자로 드림랜드를 취재하며 화양에 발을 들이는 김윤주, 둘째 아들에게만 모진 내과의사이자 전염병이 퍼기는 화양시의 의료책임자 박남철,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삐뚤어져가는 박동해, 화양소방서와 경찰서에서 각자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한기준박주환, 트럭 운전을 하는 아버지와 군대에 간 동생을 아끼는 화양의료원 간호사 노수진 그리고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개 쿠키, 스타, 링고가 전염병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인구 29만의 화양이라는 도시에서 맞닥뜨리는 재난 이야기이다. 





- 하단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


3.

재난에 대한 이야기

전염병을 막고자 화양을 봉쇄하는 정부, 이어서 통신을 끊어서 화양시 내부 시민들과 바깥의 소통을 차단하는 조치, 정부와 군인들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평화 행진을 조직하고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평화 행진에 참여를 독려하는 모습, 군인들과 헬기에서 시민들에게 무차별 발포하는 설정 등 전염병이 발병한 이후에 이루어지는 정부의 조치와 시민들의 대응이 지나치게 5.18 민주항쟁의 모습을 차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물들간의 긴장은 끝까지 이어졌지만 재난의 진행은 예상할 수 있는 결말로 이어져서 이야기의 긴장을 떨어뜨렸다. 


메르스 사태나 구제역 파동 등에서 보았듯이 우리 정부의 대응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너무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이었달까. 


재난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일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무사히 재난을 이겨내지 못한다. 정말 열심히 본인의 임무를 성실히 다했음에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전염병이 가족들에게 옮길까 조심한다고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베란다로 나온 아내와 딸에게 멀리서 인사하는 한기준은 왜 아내와 딸을 잃어야했으며, 마지막까지 통합거점병원에서 간호에 힘썼던 노수진은 강간을 당해 넋이 나간 상태에서 아버지의 부음을 들어야만 했는지, 개썰매 경주에서 늑대의 습격을 당해 썰매개들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최책감에 누구동안 개들을 아꼈던 서재형은 결국 돌보던 개에게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재난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분투가 재난의 절망감을 배경삼아 더 빛나게 하려 한 것일까.


사람의 폭력성에 대한 이야기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 중에서 악인은 박동해가 유일하다. 하지만 의대에 들어간 첫째 형과 발레리나를 앞둔 동생 사이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받으며 자라 삐뚤어진 박동해를 마냥 절대악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아들에 대한 사랑없이 비인간적인 훈육에만 몰두한 아버지 박남철이 박동해의 악을 키운 장본인은 아닐까. 


무정부 상태로 치닫는 화양에서 사람들의 폭력성은 타인에게만 향하지는 않는다. 전염병의 정체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소문이 번지면서 사람들은 평소 반려동물로 기르던 개들도 버리기 시작한다. 결국 생명의 대상으로 반려견을 기른 것이 아니라 즐거움의 수단으로 길렀기에 재난 상황에서는 버렸으리라.


4.

긴박한 이야기 흐름, 끝은 조금 허무, 그래도 재미있었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