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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너를 향하여

지하철이 끊긴 신도림 역의 풍경 - '일부' 택시 기사님들에게 드리는 글

by ayubowan 2009. 6. 28.
최근들어 연달아 두 번이나  집으로 가는 지하철 막차를 놓쳤다.
마지막으로 탔던 지하철은 신도림을 종착역으로 더 이상 운행하지 않았다. 1호선과 2호선을 환승하는 신도림역은 낮 시간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막차에서 쏟아셔 나오는 사람들로 분비었다. 

지하철이 끊겼다고 데리러 오라고 누군가에 전화를 거는 사람.
종종 걸음으로 버스를 타러 가는 사람.
집이 가까운지 유유히 역을 빠져 나가는 사람.

그리고-
택시를 타려는 대다수의 사람들.

그런 대다수의 사람들을 아는지 많은 택시들이 세워져 있었다.
여기서부터 조금은 이상한 풍경이 연출된다. 원래 신도림역 앞은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할 만큼 자연스럽게-


part 1.
택시는 택시 승강장에 줄 세워져 있지만, 어느 택시도 빈택시라고 불이 들어와 있지 않다. 
택시는 비어 있는데 빈 택시는 아닌, 그래서 가고 싶은 곳으로 택시를 탈 수 없는 그런 상황.
따라서 손님이 택시를 타서 "어디요" 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기사님들이 "어디 가실분" 하고 손님을 찾으러 다니는 그런 상황;)

"합승"
을 찾는 고함 소리와 
손님을 다 태운 택시가 빠져나가기 위한
"경적"
소리 만이 울려 퍼지는 곳이었다. 신도림역의 12시는 말이다.

part 2.
그렇게 역 앞에서 길게 늘어선 택시들이 합승할 손님들을 꽉곽 채워서 한 무리가 빠져나가도록 택시를 못 잡은 아직도 많은 수의 사람들은 이제 도로에 서서 택시를 기다린다. '합승'이라도 해서 탈걸이라고 후회하면 이미 늦었다. 일단 절대적인 택시의 숫자가 적을 뿐더러 적은 수가 택시가 나를 태워줄 확률또한 매우 낮다는게 더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말그대로 이제부터는 각자의 신들께 빌어야 한다. 운이 좋게 내가 가는 방향으로 태워줄 택시를 말이다. 
아니면 마음을 비우고 즐거운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택시 한 대가 다가온다.
택시가 느린 속도로 거의 멈출듯 와서는 창문을 내린다.
"신림가요?"
다시 창문이 올라가고 내 뒤 쪽에 서 있던 사람에게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가간다.
그렇게 몇 명의 사람에게 더 낚시 줄을 던지더니 
가장 큰 물고기로 덥석 낚아채
유유히 신도림역을 빠져나간다.

난, 그 분들에게 "멸치"쯤 됐나 보다.

나와 택시 기사분의 궁합이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택시 기사분의 낚시 질에 나란 물고기를 잡고 만족하실 확률을 얼마나 될까?

part 3.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서야 간신히-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p.s. 1.
서울의 다른 곳에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타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예전에 살았던 대전이나 포항 등지에서는 멀리에서 오신 (대전에서는 공주나 논산 쯤, 포항에서는 구룡포, 양동, 경주 쯤) 택시 기사분들이 돌아가는 길에 빈차로 가지 않으려고 손님을 찾는 장면은 많이 봤어도 이렇게 모든 택시 기사분들이 "합승"할 손님을 찾고 자신이 가는 방향 내지는 선호하는 곳이 아니면 "승차 거부"를 하는 모습은 적잖히 당황스러웠다.

뉴스를 통해서 많이 들었다.
열악한 근무환경, 사납금 제도 등 택시 기사 분들의 안정적 삶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에 절박한 어려움이나 고통을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지만 심정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관심을 기울이려고 했었는데-직접 이런 일을 당했을 때의 곤혹스러움과 답답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p.s. 2.
모든 일에 적용되는 얘기인듯 하지만, 자신의 의무 내지는 역할에 충실할 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떳떳해지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저기서 접하는 얘기 처럼, 회사 사납금이나 높은 유가 때문에 하루 하루 벌이가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가족이나 각자의 소중한 그 무엇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하시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혼자는 그렇게 이해하지만 (알량한 이해심은 아닌지 조심스럽네요;)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구조적인 변화가 먼저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지지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써주셨으면 아니 신경써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p.s. 3.
그동안 만났던 한없이 친절하고 고마웠던 수 많은 택시 기사님들께 죄송한 글은 아닌가 고민하며 쓴다.
이래저래 답답하고 씁쓸하고 혼란한 주말.

누가-
우리를-
이기적으로 만드는가-
란 물음의 연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