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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_박완서

by ayubowan 2012. 10. 15.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저자
박완서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10-08-0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연륜과 깊은 성찰이 담긴 박완서의 산문집!'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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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책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들었다. 

작가 박완서가 못 가본 길은 무엇일까 하고.


못 가본 길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가 걸어온 길에서 느꼈던 그리고 느끼는 이야기들이 알차게 들어있어 편안히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갔다. 


그의 사람, 삶 그리고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생각이 장작불로 데운 온돌방의 구들장처럼 나에게 까지 그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래서 일까 온기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책을 덮으며 문득 들었다.


그나저나 어제 잠결에 대충 받은 엄마의 전화가 마음에 걸린다. 



1.엄마 그리고 밥

우리 엄마도 친구들이 놀러오면 언제고 밥을 먹히려 애쓰셨다. 버스 시간이 아무리 촉박해도 다른 일이 있어서 잠깐 들러도 식사 때에 놀러온 친구에게 그렇게 식사를 종용하셨다. 그럴때면 극성스런 엄마가 귀찮아 "밥 안 먹는데요!"라고 소리치고 후다닥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었다. 그렇게 나누어주고 싶어하셨던 엄마가 지으신 더운밥의 의미를 이제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엄마의 더운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어서 왔으면...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손수 지은 더운밥 한 그릿이 손님에 대한 환대, 공경, 우정, 친밀감 등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온갖 좋은 것을 다 얹어줄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요새 세상과는 댈 것도 아니게 먹을 것이 귀하고 모든 여건이 척박한 때였지만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는 부랴부랴 더운밥을 지어서 대접하는 건 기본이고, 끼니때 온 손님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된다는 것도 밥을 주식으로 하니까 가능한 미덕이었다. 식구 수에 맞춰서 빠듯하게 지은 밥에서 한 숟갈씩 덜어내어 감쪽같이 밥 한 그릇을 만들던 우리 엄마들의 십시일반의 솜씨는 가히 예술이었다. 그렇다면 한두 사람분의 쌀에다 물을 듬뿍 붓고 우거지와 온갖 푸성귀를 쳐넣어 열 사람도 먹일 수 있도록 늘리는 솜씨는 요술이 아니었을까. 82p


자식들에 대한 안부는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났다. "밥은 잘 먹는게요?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감기가 들었다고? 억지로라도 밥을 챙겨 먹어야 한다. 예로부터 감기는 밥상 밑으로 도망친다고 했어. 애들 도시락 다섯이나 싸주기 얼마나 힘드냐. 그래도 빵 같은 거 사 먹게 하지 마라, 밥이 보약이다."


옛날 엄마들에게 밥은 곧 생명이요 사랑이었다. 그래서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었다. 195p



2. 뜀

축구도 좋지만 등산, 달리기도 즐기는 편이다. 열심히 오르다보면 혹은 열심히 달리다보면 힘이 부쳐서 오르는 그리고 달리는 그 자체만 생각하고 잡념이 사라지는 그 순간이 좋더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당장 하고 일은 어떻게 마무리해야하는지, 저녁은 멀 먹어야 할지와 같은 생각이 떠오를 틈없이 거친 호흡과 빠르게 뛰는 심장, 뛰어지는 다리에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이 묘하게 평안하다.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어쩌면 진짜 나와 마주하고 스스로와 경쟁하는 순간이어서그렇지 않을까.


그(무라카미 하루키)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운동도 누구하고 경쟁하고 적수를 의식하는 게 싫어서 혼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달리기를 좋아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경쟁자 없는 운동이 가능할까. 아마도 그의 적수는 자기 자신일 것이다. 이 세상에 나하고 맞설 적수는 나밖에 없다는 것처럼 도저한 자신함, 우월감이 또 있을까. 126p


3. 축구

축구가 하고 싶어졌다. 축구를 그래도 제법 즐겼던 나보다 더 축구가 주는 쾌감을 잘 설명해준 작가가 고마울 따름이다.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고 날뛰고 뒤엉키는 그 곳에 서 있고 싶다.


골문은 넓은 것 같지만 공이 뚫고 들어가 그물을 흔들게 할 수 있는 허점은 공의 크기만큼 밖에 열려 있지 않다. 그 허점도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돌파하지 않으면 더 이상 허점이 아니다. 공이 스스로 살아 있는 것처럼 그 절묘한 순간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여태까지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고 날뛰고 뒤엉키던 힘들이 공의 심장부에 동시에 꽂히면서 눈부시게 폭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171p


공은 차기만 하면 스스로 생명럭이 생긴다. 지구도 신이 찬 공이 아닐까. 지구를 신이 찬 가장 멋진 공, 또는 신의 시구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구인의 오만일 테지만, 공이라는 형태를 최초로 만들어낸 이가 즉 신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그 완벽성 때문이다. 구형의 표면에선 아무 데나 자기가 선 자리가 중신이 된다. 만인이 중심일 수 있는 조형물은 신의 상상력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이다. 18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