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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개밥바라기별_황석영

by ayubowan 2012. 10. 22.



개밥바라기별

저자
황석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8-08-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사는 거야!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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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이 이야기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곰곰히 읽다가 문득 나도 나의 이야기를 한번쯤 써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7~8월 무렵 친구가 거창하게 이야기한다면 자서전 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써보라는 제안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자극을 받아 조금 끄적대다가 그만 두었던 그 작업을 다시 해볼까하는. 


'준'이의 고민에 100%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자기 자신에 집중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나'에 대해 온전히 고민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을까. 어쩌면 그래서 여행도 가고 명상도 하고 일기도 쓰는게 아닐까. 이런 생각의 끝에 작년에 잠깐 하다만 나에 대한 기억을 적어보는 '뻘짓'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2. 

준이가 친구들과 방황하는 청소년기의 이야기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비현실적이다. 시대가 변해서 가출하여 무전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들, 무전여행하는 아이들을 존중해주거나 따뜻하게 받아주는 어른들, 문예반 교실 창문너머로 담배를 뻐끔 피우는 학생들과 같은 모습은 없어졌지만 청소년들이 그리고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의 종류는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정해진 길을 벗어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3.

 입학식을 하고 나서 교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엄청나게 많은 수의 낯선 얼굴들 가운데 던져진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옆자리의 짝을 밀어낸 녀석, 코를 찔찔 흘리는 놈, 꺄악 하고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는 계집아이, 책상 사이의 통로를 부산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놈에, 정신이 다 나갈 지경이었다. 귀를 막고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손가락을 눌렀다 떼었다 해보면 그들이 내는 소음이 먼 공장에서 들리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처럼 규칙적으로 변했다. 45p


유치원을 거치지 않고 처음으로 국민학교에 발을 들이던 날, 그리고 벽지학교인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버스를 타고 가야했던 중학교 입학식 날의 그 생경하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소속을 새로이 옮길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에서면 언제나 많은 수의 낯선 얼굴들 가운데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참. 



우리는 어째서 경치 좋은 호숫가나 모래사징이 근사한 해수욕장에 가면 아무 생각이 안 나고, 지저분하고 시끌벅적한 부둣가나 뱃사람들의 선술집에 가야 정서가 발동되는지 모를 일이야. 168p-169p


아침부터 회를 뜨고 매운탕을 시켰는데 꼼장어까지 나오고 보니 너나없이 안줏거리 핑계를 대고 소주를 딱 한 병만 먹자고 했다.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아서 먹다보면 세 병이 되기 마련이었다. 178p 


얼큰한 것 좋아하고, 술 마시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안주를 찾고, 음식 남기는 것이 싫어서 다 먹으려 노력하는 나의 술자리도 이런 느낌이다. 왠지 예쁜 조명 아래 예쁘고 멋있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즐비한 뜻도 잘 모르겠는 영문 표기가 멋지게 장식된 곳보다는 둥근 스뎅 탁자에 등받이 없는 포장마차 의자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그런 곳에서 술 맛이 나는 건 그저 천성이려니.



당시에는 명문고교의 어린 '신사들의 모임'을 서로가 대단하게 여졌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세상 어느 사회에나 있는 엘리트 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 중략 -

......

그들은 사창가를 가거나 어두운 대폿집을 드나들며 퇴폐의 흉내도 냈지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지도가 되는 길인가도 잘 알았다. 절대로 자기 자신을 정말 방기하지는 않았다. 인호나 나처럼 온목을 던지는 일은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신나는 모험이었지만 그들 자신은 끝내는 신중한 충고를 하며 한 걸음 비켜섰다. - 중략 - 

.......

어쨌든 내가 그때의 그 모퉁이에서 삐끗, 해던 것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필연이었다. 그 길은 내가 어릴 적부터 어렴풋하게, 이건 빌딩가의 대로처럼 너무도 뻔하고 획일적이라고 느껴왔던 삶으로 가게 될 확실한 도정이었다. 그러나 벗어났을 때의 공포는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자퇴를 하고 나서 맥놓고 걸어가던 하굣길이 생각난다. 막상 일을 저질러놓고 나니 이제부터 내 앞에 놓인 길은 어디나 뒷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이제 의사나 법관이나 관료나 학자나 사업가나 존경받을 장래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 잘려나온 것이다. 184p-186p http://iamdreaming.tistory.com/224


나는 이쪽에서 보면 '신사들의 모임'에 속해있고 그쪽에서 보면 삼천포에 빠진 그런 경계인쯤이 아닐까.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더 불안해하는지도 모른다. 돼지 발정제를 마신 것처럼 사는 그쪽이 싫어 삼천포에 빠진 삶을 살겠다고 이 곳에 와서는 다시 '신사들의 모임'을 기웃기웃하고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뒷길을 선택하는 것에는 공포와 불안감이 따라 오는 것 같다. 


다시 갈림길에서 방향을 선택해야 시간이 다가오는 요즈음 준이의 주관과 확신을 닮고 싶다. 



사람은 씨팔......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거기 씨팔은 왜 붙여요?

내가 물으면 그는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신나니까......그냥 말하면 맨숭맨숭하잖아. 257p



 헤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다시 만났을 때는 각자가 이미 그때의 자기가 아니다.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28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