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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사막

by ayubowan 2009. 6. 30.


갑자기 나는 사방이 낯설어졌다
늘 보던 창이 없고 창에 비치던 낯익은 얼굴이 없다
산과 집, 나무와 꽃이 눈에 설고 스치는 얼굴이 하나같이 멀다
저잣거리를 걸어도 뜻모를 말만 들려오고
찻집에 앉아 있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뿐이다
 
한동안 나는 당황하지만 웬일일까 이윽고 눈앞이 환해지니
귓속도 밝아지면서
 
죽어서나 빠져나갈 황량하고 삭막한 사막에 나를 가두었던 것이
눈에 익은 얼굴과 귀에 밴 말들이었던가
아는 얼굴이 없고 남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해
비로소 얻게 되는 이 자유와 해방감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또 다른 사막임을 내 왜 모르랴만